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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Yun-Hee Toh 도윤희 : 추상, ‘나’를 찾는 여정

Jan 28, 2022

도윤희 작가에게 '추상'은 무엇일까? 갤러리현대의 개인전 <베를린>은 그 질문에 관한 작가의 답변이다. <W> 매거진 2월호의 "작품이 말을 걸 때"라는 주제의 피처 기사를 통해 갤러리현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재석이 도윤희 작가를 만났다.   

“전시 제목을 베를린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도윤희 작가의 평창동 스튜디오에서 내가 물었다.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였지만, 찰칵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 그거 좋네요. 음···.” 도윤희 작가가 맞장구를 치며 단어를 음미했다. 생각에 잠긴 그의 얼굴이, 팬데믹 이후 한동안 방문하지 못한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바라본 해 질 무렵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 같았다. 갤러리현대에서 2월 27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베를린>의 전시 제목은, 그렇게 뚝딱 결정됐다. 2015년 <Night Blossom>전 이후 7년 만의 개인전. 이곳에서 우리는 작가가 베를린과 서울의 스튜디오에 스스로 갇혀 지내며 크고 작은 캔버스에 남겨놓은 아름다운 추상적 내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 내면에 존재하던 추상의 이미지와 에너지를 끌어올려 캔버스에 분출해 완성한 도윤희만의 육감적이고 감각적인 회화 4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Installation view of ‘Yun-Hee Toh : BERLIN’ at Gallery Hyundai.

“베를린에서 무엇인가 영감을 얻고 새로운 작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원래 나란 인간이 누구인지, 내면의 나를 자각할 기회를 마련해줬죠.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지난 내 인생의 시간이 한꺼번에 확 정리되어 새롭게 통합되어 나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지금. 그런 건 내가 상상 못했죠.”

전시 제목의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독일의 도시 베를린이 아니다. 한 인간에게 영향을 준 모든 영감의 장소들, 기억과 시간 그리고 경험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인생을 뒤흔든 깨달음의 순간들, 색과 형태, 이성과 감각에 관한 다채로운 상념을 은유하는 장치이다. 도윤희의 세계로 진입하는 작은 열쇠라 할 수 있다. 도윤희는 1999년 이후 주기적으로 베를린을 찾았다. 그는 베를린만의 데카당스함과 기괴한 무거움에 매료됐고, 2012년 베를린의 동쪽 지역 공장을 개조한 건물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2011년 <Unknown Signal>전 이후, 작가로서 변화를 갈망하던 시기였다. “베를린에서 무엇인가 영감을 얻고 새로운 작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원래 나란 인간이 누구인지, 내면의 나를 자각할 기회를 마련해줬죠.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지난 내 인생의 시간이 한꺼번에 확 정리되어 새롭게 통합되어 나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지금. 그런 건 내가 상상 못했죠.” 변화는 작가의 내면에서 시작됐지만, 장소의 이동이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연필로 캔버스를 촘촘히 채우고 바니시로 마감하는 과정을 반복해 만들어진 이전 작품의 아스라한 화면은 물감과 붓, 작가의 손이 만나 화면 저 멀리에서 피어오른 색색의 뭉게구름 같은 이미지로 전환되었다. 붓보다 손이 먼저 화면에 닿아 탄생한 <Night Blossom> 연작에서 그는 빛이 사라진 밤에만 보이는 미지의 색채와 형태를 포착했다. 작가는 이를 문학적인 언어에서 회화적 언어로의 전환이라 설명한다.

Yun-Hee Toh, Untitled, 2021, Oil on canvas, 250 x 195 cm.

“‘아, 내가 이런 걸 느끼고 알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내는 거. 나 본연의 상태를 발견하는 거죠. 찾아내는 게 아니에요. 내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거죠, 거울같이.”

도윤희에게 <Night Blossom> 연작은 다음 단계로 향하는 중간 무대였던 것일까? <베를린>전을 방문한 관람객은 ‘이게 도윤희 작가의 작품 맞나요?’라며 놀란다. 또 다른 변신의 신화가 전시장을 채운다. 작품의 얼굴이 그 이전 작품과도 확연하게 달려졌다. 화면 저 멀리에서 피어나던 꽃 같던 안개는 물감 그 자체의 신체를 획득한다. 색색의 물감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캔버스 위에서 아슬하게 꿈틀거리고 흘러내린다. 색이 쌓이고 충돌하지만 그 와중에 느닷없이 조화를 이룬다. 도윤희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빛과 색, 형태를 재빠르게 캔버스로 옮기기 위해, 마치 육탄전을 벌이듯 물감을 주물럭거렸고 음악적인 선들을 쌓았다. 화면을 장악한 색의 파노라마와 물결 같은 터치는 인상주의 그림의 세부 장면을, 물감을 움켜쥐었다 빠르게 펼친 손의 흔적은 고대 동굴 벽화를 떠올리게 한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는 느낌! <Night Blossom> 연작 이후 고심 끝에 탄생한 새로운 작품은 내면의 갈증을 해소하듯 완성됐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연을 이미지화해온 도윤희. 그에게 작업은 ‘나를 찾는 여정’에 다름없다. “‘아, 내가 이런 걸 느끼고 알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내는 거. 나 본연의 상태를 발견하는 거죠. 찾아내는 게 아니에요. 내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거죠, 거울같이.” 나의 내면 풍경을 이미지로 옮긴다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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